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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아이 마이 중또이 디 항꿘








월남어 교육대 졸업하기 전 조별로 월남부대에 일주일씩 파견 되었는데 나는 다른 두 사람(오관중, XXX)과 야자수가 밀림을 이루고 있는 봉손 지역 월남부대에 한 번도 한국군이 주둔하지 않은 지역에 미군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하여 중대장에게 신고를 하니 반가운 인사와 함께 “응아이 마이 중또이 디 항꿘”이라고 우리에게 말 한 것이다.

 항꿘이 무슨 뜻인지 모른 체 적당히 대답을 하고 우리 셋은 지하 벙커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는데, 총을 들고 빨리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가니 월남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우리는 어제 월남군 중대장이 “응아이 마이 중또이 디 항꿘”(내일 우리는 작전을 나간다.)  이라고 한 말에 항꿘이 작전이라는 뜻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월남에 도착하여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더욱이 작전을 나가는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는 월남 군인들의 모습에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총 끝에 냄비나 보따리를 매달은 사람도 있었고, 슬리퍼를 또는 자기가 필요한 이상한 것들을 매달고 철모가 아닌 밀짚모자나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어 함께 전쟁을 나가는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불안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이 허수아비 같은 군대와 신출귀몰 한다는 베트콩과 전쟁을 한다는 생각에 우리 셋은 재수 없게 오늘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랬다. 나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월남에 파병되어 한 번도 작전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광대 패 같은 군인들과 전쟁은 곧 죽음을 예고하는 지난날의 기억이 내 머리 속에 스쳐가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친구와 어느 시골 길에서, 광주리를 내려놓고 쉬든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광주리를 자기 머리에 올려 달라고 하시기에 올려 주었는데 나를 보신 할머니는 혀를 차시면서 “ 니는 목심이 짧은기라.” 하시는 것이었다. 이 마귀 같은 할머니 재수 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고, 그리고 잊어 먹었는데 항꿘 앞에서 그 마귀 할머니 생각이 불현 듯 떠 오른 것이다.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수도 사단에서 복무 중 월남 파병 부대로 수도 사단이 차출 되어 지원병 모집을 할 때 나는 일차적으로 지원을 했고(지원을 안 할 수도 있었다.) 대대에서 일주일 내내 18명 지원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원을 하고 보급 창고에서 잠을 잘 적에 나는 그 마귀 할머니 생각이 떠올라 아하, 내가 월남에 파병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구나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월남에 도착하여 포병부대인 나는 진지 구축과 경계만으로 총 한방 쏘지 않고 월남어 교육대에 입교하여 항꿘 앞에서 두 번째 마귀 할머니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마귀 할머니는 어려울 때 마다 떠오르지만 이제는 나이 70을 바라보며 내 목숨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마귀 할머니가 나를 보호해 주는지도 모른다. 광주리를 머리에 올려준 보답으로,)


작전은 야자수 밀림지역으로 진군을 하여 베트콩 지역의 경계선에서 월남 사병들이 사격을 하는가 십드니 바로 총성이 멎으며 점심 취사가 시작 되었고 식사를 마친 다음 곳 바로 시아스타임이라고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항꿘은 끝났고, 부대로 돌아왔으며 미고문단은 전과를 상부에 보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3개월의 짧은 교육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지만 좀 더 군사적인 용어를 많이 배웠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그때 월남교관은 “오메가 동호 라 똣 녘.”(오메가 시계가 최고 좋다.)을 수없이 반복한 생각이 기억 속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2010년 5월 10일


신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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